[유인물] 전국노동자대회 : 전태일 정신 ‘평등’을 향해, 가자! 체제전환!
2024년 11월 9일 전국노동자대회
윤석열 끌어내릴 의지 모아 자본주의 흔들때 정권도 흔들린다
▲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정치를 복원하는 것은 양당에 맡길 과제 아냐
▲ 부정의와 폭력의 구조에 맞선 변화는 우리 스스로 세력화하는 만큼 가능
▲ 신자유주의 보수양당 정치에 의해 지워진 목소리 연결해 체제전환으로!
물러나 마땅한 지지율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0월 말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잘 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19퍼센트에 그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잘 못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72%에 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진 촛불시위가 폭발하기 직전인 2016년 10월 말에 최초로 20%선이 붕괴된 바 있다.
지난 11월 7일 아침 윤석열은 기자회견을 열어 두루뭉술하고 초점이 불분명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던졌다. 결국 아무 대책도 없는 무능하고 무례하며 한심한 인간이란 인상만 강화했을 뿐이다. 윤석열 지지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 전인 2016년 11월과 12월 즈음 평균 5%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것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박근혜가 전통적이고 확고했던 지지층마저 상실하게 됐던 결정적 계기는 11~12월 내내 지속된 수백만 규모의 대중 투쟁 때문이었다.
2년 전부터 지속된 윤석열 퇴진 집회의 동원 규모가 ‘퇴진’이라는 요구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데 지난 10월 말, 민주당측의 주도로 명태균 씨와 윤석열 사이의 통화 녹취 내용이 공개되면서 양상은 다소 달라졌고, 강도 높게 공천 개입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변명은 “취임 전 통화”라는 것이었고, 순수히 법률적 해석을 놓고 본다면, 현재 공개된 녹취만으로 탄핵의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과거 박근혜 퇴진이 관철되는 과정에서 실제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헌법재판소의 엄밀한 법률 해석이 아니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퇴진’을 요구했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그 힘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보정당이나 좌파의 준비가 극히 미비하긴 했지만, 작게나마 그 힘이 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쏠릴 가능성도 존재했다. 2016년 퇴진 촛불 초기 ‘하야’ 요구를 내거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이 꽁무니 쫓듯 입장을 변경했던 것도, 여당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비박계가 대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탈한 것도 모두 대규모 시위 물결의 힘 때문이었다. 따라서 향후 정국의 향배 역시 달라진 정세, 민중의 달라진 삶의 조건에 맞는 요구가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 고관심층 바깥에 존재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퇴진과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이후 한국 사회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게 됐고, 그 결과 깊은 실망과 환멸을 경험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같은 방식, 같은 논리로 ‘윤석열 퇴진 운동’이 과거처럼 확대되기란 쉽지 않다.
퇴진 이후,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한국 사회에 끔찍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데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들은 하필 대통령이 윤석열이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넓게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돼 있고, 길게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것이며,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일정하게 합의한 결과였다. 특히 파견법 제정, 비정규직 확대 등 우리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노동권을 무너뜨려온 결정을 해온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는 매일같이 상대를 향해 공방을 벌인다. 하지만 부자 감세나 군수산업 육성, 친기업 규제 완화에 대해선 논쟁없이 합의한다. 양당은 ‘주주 수익을 어떻게 환원할지’에 대해서는 잘도 합의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신경쓰지 않는다. 부동산에 대한 세금 부과는 걱정하지만 서민들의 임대료 부담은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 역시 아무 차이가 없다.
서로가 “김건희 방탄”, “이재명 방탄”이라며 말잔치를 벌이는 사이, 민중의 삶에 진짜 중요한 문제들은 어디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녹취록을 통해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윤석열과 김건희의 측근이었던 명태균이 깊숙히 연루돼 있었음이 드러났지만, 이에 주목하는 민주당 정치인은 전무하다. 설상가상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던 민주당은 결국 폐지로 입장을 정리했다. 겉으론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를 비판하면서도 내심 동조해오더니 결국 윤석열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퇴진 투쟁의 결론이 다시 민주당이라면, 달라질 게 있을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중들의 투쟁을 단순하게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수렴시키고 만다면, 사회운동 스스로 체제의 모순 안에 머무르게 만든다.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협 등에 맞선 불복종이 그저 ‘윤석열 퇴진’ 구호에서만 멈춘다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번갈아 대권을 장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지난 민주당 정권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파국적으로 만들어왔는지 똑똑히지켜봤다. 이 신자유주의 세력은 진보적이지도, 노동자와 도시빈민, 성소수자를 위하지도, 그렇다고 유능하지도 않았다. 더 큰 분노를 조직하고, 위기를 반복하는 체제를 넘어서려면 윤석열 퇴진 투쟁의 성과가 단지 ‘정권교체’에 머물지 않도록, 지금-여기의 사회운동들을 체제전환으로 연결하고 조직해야 한다.
참았기 때문에?
2024년 전국노동자대회 포스터의 좌측 상단에는 “참지 말고 몰아내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심이 되어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정말 노동자들이 ‘참았던 것’이 지금껏 윤석열을 퇴진시키지 못한 문제였을까? 우리는 스스로 왜 박근혜 퇴진 촛불 이후에 문재인 정권을 불러왔고,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좋은 일인지 반문한 적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정권 퇴진과 함께 노동자 민중의 대안, 사회운동의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퇴진’만큼이나 더 열렬히 이야기하고 있는가? 어쩌면 지금 ‘퇴진 투쟁’의 도화선이 폭발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그저 참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는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날 너나 없이 ‘전태일 정신’을 말한다. 심지어 친자본 보수언론마저 제멋대로 ‘전태일’을 소환해 자신들의 논리와 억지로 연결시킨다. 혹자는 정치적 의미를 삭제한 복지망 구축을 ‘전태일 정신’이라고 명명해 투쟁하는 노조를 공격하는데 악용하기도 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는 지면상의 논쟁에서 멈추지 않는다. 민주노조의 사회적 위상이 하락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기세를 잃으면, 울타리 바깥의 많은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해고되고 권리를 잃기 쉬울 것이다. 대신, 더 많은 노동자들을 모으기 위한 궁리와 자기 비판, 혁신을 건설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해나간다면 실로 조직 없는 노동자들의 우산이 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전태일 정신은 결국 ‘평등을 향한 정신’이었다. 그것은 가장 정세적이고 동시대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새롭게 갱신되고 규명될 수 있다. 혼란의 시대, 전태일의 얼굴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사회운동답게 응답해야 한다. 투쟁의 자리에서 잊혀지고 단절됐던 이야기들, 신자유주의 보수양당이 주도하는 정치 속에 지워진 목소리들에 귀기울이고 연결해야 한다.
유동적인 정세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이 책임지는 투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반면, 개별 투쟁의 요구들을 윤석열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모으는데 그치면 투쟁의 성과는 민주당의 성과로 끝날 것이다. 윤석열 퇴진으로 해결되지 않는 우리의 요구 그 자체를 분명히 하는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윤석열을 임기 내 끌어내리고 싶은 의지들을 모아 자본주의를 흔들 때 정권도 흔들린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키며, 윤석열부터 퇴진시키고 보자며 우리의 해방을 미루는 대신 다른 세상을 향한 우리의 길을 더욱 넓히자. 체제전환의 요구가 모일 때 체제전환의 길이 넓어질 것이다. 투쟁!
자본주의를 직면할 시간… 가자, 체제전환!
물가는 내릴 줄 모르고, 임금은 오를 줄 모른다. 기후재난, 젠더폭력, 노동재해, 전세사기…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부정의와 폭력의 구조가 두터워져 가고 있다.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불안과 냉소 속에 일확천금을 향한 각자의 레이스에 골몰한다. 경쟁이 가혹해지는 만큼 기본권은 무너진다. 밥도 약도 집도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지 않는다. 자본은 필요를 위해 생산하지 않고 이윤을 위해서만 생산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제전환
명실공히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대체할 힘과 대안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대신 숱한 생명들이 스러져가는 지금, 우리에게는 절실히 대안이 필요하다. 체제전환운동은 이윤 창출이 아닌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중심에 두는 대안체제를 건설하는 운동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수탈, 억압에 맞서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를 재조직하는 운동이다.
대안을 조직하자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역사를 경험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이는 사회운동이 보수양당 구도를 강화하는 ‘민주대연합’, ‘반보수 전선’으로 포획되기를 반복한 결과이기도 하다. 1번이 더 나쁜지 2번이 더 나쁜지 설명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역할이 아니다. 보수양당이 서로 으르렁대며 소리를 높이는 만큼 민중의 대안을 말할 자리는 사라진다. 우리의 대안을 우리가 선언해야 한다.
체제전환운동, 우리의 다짐
채널을 돌릴 때마다 충격적인 재난과 사고가 반복된다. 하루 평균 2.3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하고, 가난한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미래를 꿈꾸는 것은 소수의 특권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의 실패에 잔인하게 굴기를 꺼리지 않는 오늘로 이어졌다. 사회가 나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을 깨친 사람들은 불안과 냉소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
이윤만을 위해 움직이는 자본의 쳇바퀴는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 각자도생의 명령 아래 돌봄, 연대, 생명, 평등, 정의와 같은 말은 폐허가 되었다. 전쟁과 기아로 수많은 생명이 사라질 때도 상승이 기대되는 관련 주식 종목만이 전파를 타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울부짖는 경매장에서 누군가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린다. 이 잔인한 세상에도 희망이 있을까?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문제를 초래한 체제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경제시스템을 넘어 제도화된 사회질서다. 젠더, 인종, 생태 등 경제적 영역이 아닌 것으로 보였던 영역으로 자본주의 비판을 확장할 때 우리는 이 세계를 더 정확히 이해하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보수 양당은 이 체제를 만들고 유지해온 공범이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90년대 이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체제에 흡수됐다. 선거가 열릴 때마다 여의도로,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거버넌스로 조각조각 쪼개졌고, 이제는 '시민사회' 일각이 나서 민주당과의 연합을 요구하는 현실마저 목도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무너질 능력조차 없다. 대신 자신의 실패를 민중·남반구·생태계 전반에 더 가혹한 방식으로 전가한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종말하지 못해 미래가 사라지는 지금, 제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이 절실하다.
저 홀로 세상을 바꾸는 운동은 없기에, 우리의 전망을 한데 모아 세상을 바꿀 꿈을 꾸자.
‘체제전환’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구호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든 부정의에 맞서 지구 곳곳에서 투쟁해온 이들이 얻은 통찰이다. 가혹한 노동환경 때문에 건강을 잃고, 경쟁적 사회문화 속에서 서로 돌볼 기회를 잃고, 촘촘하게 조직된 차별과 착취의 구조 아래 연대와 연합의 꿈을 빼앗긴 모두가 스스로의 권리를 되찾고자 나서는 곳에서 체제전환이 시작된다.
체제전환을 현실로 만드는 힘은 구호가 아니라 연합한 몸들로부터 나온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전망과 실천으로 스스로를 재조직하자.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의 자리에서 보편적 권리와 정의를 요구합시다. 닫힌 문을 두드리고, 거리에 서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체제전환의 희망을 말하고 조직하자.
나쁜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막을 수 없다. 서둘러 비관하거나 공허히 낙관하지 말고, 단단한 현실 위에 서로를 일으켜 세우자. 이미 저항해온 당신의 꿋꿋한 날들이 우리 희망의 근거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함께 더 멀리 나아가자. 더 많은 운동과 사람들을 연결하고, 체제에 맞서는 민중의 힘을 한데 모으자. 두터운 사회운동의 힘으로 대안 세계의 씨앗을 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