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월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110일이 넘도록 선고일을 밝히지 않던 헌법재판소는 만우절인 지난 4월 1일, 거짓말처럼 탄핵심판 선고일정을 공고했다. 헌재는 절차적 하자가 없도록 숙고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하지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던 것은 사실이다. 4월 4일 금요일 오전 11시, 우리는 윤석열 파면 여부를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우리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마음을 다독이며 광장을 정비해야 한다. 체포·구속에서 석방까지, 온갖 특권을 누리며 지금도 한남동 구중궁궐에 있을 내란수괴 윤석열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광장의 힘으로 내란범 윤석열을 헌법재판소 법정 앞으로 끌고 왔다. 헌재는 광장의 요구에 부응해 8:0으로 파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재는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현재로선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다수의 논평가들은 '파면'에 무게를 실고 있다.

선고가 지연되는 이유

윤석열 측과 국민의힘은 “국회 측이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철회했다”는 점을 들어 ‘각하’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뇌피셜’에 그칠 뿐 또렷한 취재원을 갖고 떠드는 것은 아니다. 관련 쟁점에 대해, 소추 사유의 철회가 아니라 ‘적용 법조의 일부를 우리는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각하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견해도 크다. 수차례 변론이 진행된 상태에서 각하를 주장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어느 한 재판관이 이성을 잃는다면 이 터무니 없는 주장을 고집했을 수 있다. 어쨌든 평의가 길어졌던 것은 8인의 재판관들 내에서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월 중순에는 한덕수 탄핵안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평의가 길어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애초 한덕수 탄핵소추의 이유가 윤석열의 위헌·위법 계엄에 공모하고 동조했다는 것이고, 이는 윤석열 탄핵의 배경인 내란 행위와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충분하진 않았다. 그리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 26일 항소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이 이야기도 쏙 들어갔다.

평의가 길어지는 이유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추론은 재판관 내부의 견해 충돌이다. 재판관 중 한두 명이 확연하게 각하 또는 기각 입장을 제시하고, 그외에 한두 명이 또렷하게 입장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면, 반드시 파면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고 결심한 재판관들 입장에서는 평의를 더 끌고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운 한국 사회의 오늘을 반영한다. 여러 평론가들은 헌법재판소가 마치 완전무결하게 법의 합목적성에 따라 소신있는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라는 환상을 끌어들여 3월 초 8대0 결론을 예상했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법의 이념과 헌법재판관들의 직업윤리 역시 곤경과 구렁에 빠지기 마련이다. 모두가 말하듯, ‘대한민국’의 헌법은 이미 무너지고 있고,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자행하는 자들은 다름 아닌 지배계급 자신이다.

우리에겐 꿈이 있다

윤석열 구속 취소와 탄핵선고 지연에 대해 광장의 시민들이 느낀 감정은 불안과 공포, 분노였다.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전 세계가 목도한 내란범 윤석열은 무지하고 위험한 인물이다. 그가 파면되지 않으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로 돌아가 다시 국회를 장악하고 군을 동원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눌 수 있다. 그는 한반도 전쟁마저 불사할 것이고, 제주 4.3항쟁 이후와 광주 오월항쟁 이후의 학살을 재현시키려 할 것이다. 극우세력을 선동해 우리 사회를 극단적 혐오가 가득한 사회로 만들려 할 것이다. 프랑스 장 마리 르펜처럼, 남은 생애를 극우세력의 선봉으로 살다 죽고자 할 것이다.

윤석열이 파면되더라도, 종신형을 받더라도 극우세력의 준동을 저지하지 못하면 금방 풀려날 수 있다. 불평등과 혐오, 차별 등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쁜 역사는 되풀이 된다. 살인마 전두환이, 숱한 재벌들이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 이유도 여기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꿈이 있다. 절망적 상황에도 우리가 윤석열 파면을 끝내 이루려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가 있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나라, 평등한 나라,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 평화로운 나라에서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일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 전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자꾸만 후퇴하는 민주주의, 시장화된 경쟁 사회에서 너무도 고단했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착취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잃으며, 경쟁과 착취로 내몰렸다.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를 잃었고, 비인간 동물과 환경을 착취하며 살아왔다. 이런 사회에서 정치가 정상적일리 만무하다.

아래로부터의 투쟁만이

이럴 때일수록 가장 큰 변수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것이고, 사회를 수호하는 것 역시 풀뿌리에서부터 응집된 평범한 사람들의 단결된 힘과 실천 뿐이다. 계속해서 광장을 지키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일상으로 확대하고 다양한 의제들로 넓혀갈 때에만 우리 사회를 민주주의와 ‘평등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만에 하나 헌재가 윤석열을 탄핵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끈질긴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에게 다정한지. 윤석열 같은 자들이 또 나타나더라도, 광장에서 다시 만나자. 우리의 연대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포용하고 살릴 수 있는지 증명하자.

첫째, 전국 각지의 광장 투쟁 거점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자. 일찍이 우리는 3월 19일 광화문에선 ‘민주주의 수호의 날’을 정하고, 극우세력 대응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강연회, 민중가요 노래자랑, 리본 행동, 한끼 단식, 이태원 유가족과 함께하는 159배 등 다양한 행동들을 펼쳤다. 광주에서는 매일 밤마다 <5.18민주광장에서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를 지키자!> 책읽기 모임이 열리기도 했다. 매일 저녁 전국 각지에선 파면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진행됐고, 수만여 명이 함께 했다. 지난 3월 27일에는 이런 기세를 모아 전국 시민총파업을 요청했고, 조직 노동자 대오 바깥의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에 함께 했다. 체력적으로 고단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행동이 투쟁을 확대하는 중요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둘째, 광장의 목소리를 일상으로 확대하자. 지난 시민총파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퍼진 선전물은 광장에 내내 함께 하던 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든 ‘총파업’ 선전물이었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와 함께 하는 단체 텔레그램방에 선전물이 올라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퍼날랐고, 자신의 일터와 동네 곳곳에 선전물을 붙이며 투쟁을 조직하고자 했다. 나주에 사는 한 주민 역시 경비노동자와 협의해 아파트 곳곳에 ‘윤석열을 파면하라’ 스티커를 부착했다. 전국방방곡곡 수만 장의 윤석열 파면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고, 동네서점이나 음식점에서도 심심치 않게 시민들 자신을 독려하고 투쟁을 일상으로 확대하는 행동들이 펼쳐졌다. 민주노총 산별노조 대표자들은 만약 헌재에서 파면 선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무기한 총파업을 조직하겠다는 결의로 나서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장의 의제를 확대하는 것에 있다. ‘우선 윤석열부터 탄핵시키고 말하라’는 주장은 언뜻보면 그럴 듯하지만 오히려 광장을 좁히기만 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요구들을 광장으로 응집시켜 운동을 보다 두텁고 넓게 만드는 것이 광장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극우세력과 다른 우리들의 행동양식이다. 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워선 승리할 수 없다. 지독하게, 그러나 넓고 두텁게 싸워야 한다.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가 함께 한 3.27 평등시민 총파업이나 3.29 민중의 행진은 그런 실천의 중요한 사례다. 윤석열 퇴진 투쟁을 매듭짓는 과정에서 이런 실천들을 조직해 운동의 길을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언제 끝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에서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쳐서도 안 된다. 선고일 발표가 지연되던 시기에 평론가들은 “21일도 아니면 끝”, “28일이 진짜 마지노선”, “4일 안되면 진짜 끝장”이라고 제멋대로 떠들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한 번도 스스로의 마지노선을 정한 적이 없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우리의 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어떤 결과든 두렵지 않다’는 각오로 단단해지고, 또 넓어지는 것만이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운동에 함께 해온 이들이 냉정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이후 열릴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그 길을 열어가자!